16년째 멈춰 선 공사장에 온 환상
스가랴서는 소선지서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어렵다고 소문난 책이에요. 붉은 말 탄 사람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고, 뿔 넷과 대장장이 넷이 나오고, 길이 9m짜리 두루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곡식 바구니 안에 여인이 앉아 있어요. 😄 처음 읽으면 “선지자님, 어젯밤에 뭘 드셨어요?” 하고 묻고 싶어져요.
그런데 배경을 알면 이 환상들이 갑자기 또렷해집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은 감격 속에 성전 기초를 놓았어요(스 3:10–11).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방해로 공사가 멈췄고(스 4:24), 그렇게 16년쯤이 흘렀습니다. 다들 자기 집 짓느라 바빴고(학 1:4), 공사장에는 잡초만 무성했어요. 그때, 다리오 왕 제2년(주전 520년)에 하나님이 두 선지자를 보내세요. 노장 학개와 젊은 스가랴예요(스 5:1).
학개가 “일어나 지으라!” 하고 등을 떠밀었다면, 스가랴는 하늘의 커튼을 걷어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이 아직 너희를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 작은 공사장 너머에 훨씬 큰 그림이 있다.”
스가랴서를 여는 다섯 개의 단어
하룻밤에 본 여덟 장면, 거울처럼 짜인 구조
스밧월(열한째 달) 24일 밤(1:7), 스가랴는 여덟 개의 환상을 연달아 봅니다. 이 환상들은 그냥 나열된 게 아니라 거울처럼 짝을 이루며 한가운데를 향해 모여들어요.
| 환상 | 본 것 | 메시지 |
|---|---|---|
| ① 1:7–17 | 골짜기 화석류 나무 사이의 붉은 말 탄 사람과 뒤따르는 말들 | 세상은 평안한데 예루살렘만 폐허. 천사가 “언제까지니이까” 묻자 하나님이 답하세요.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 불쌍히 여겨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1:14–16) |
| ② 1:18–21 | 네 뿔과 대장장이 넷 | 유다를 흩은 열방의 “뿔(힘)”을 하나님이 깨뜨리실 장인들을 보내세요 |
| ③ 2:1–13 | 측량줄을 든 사람 | 예루살렘은 사람이 너무 많아 성벽 없는 성읍이 될 것.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2:5). 그리고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2:8) |
| ④ 3:1–10 |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과 고소하는 사탄 | 죄를 벗기고 새 옷을 입히심 (아래에서 자세히) |
| ⑤ 4:1–14 |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 |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4:6) |
| ⑥ 5:1–4 | 길이 20규빗(약 9m), 너비 10규빗(약 4.5m)의 날아가는 두루마리 | 도둑질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를 찾아가는 저주. 십계명 두 돌판의 앞뒤를 대표하는 두 계명이에요. 그 크기는 솔로몬 성전 현관과 같아요(왕상 6:3) |
| ⑦ 5:5–11 | 에바(약 22리터 곡식 바구니) 속에 앉은 여인 “악”, 납 뚜껑으로 덮어 학의 날개를 단 두 여인이 시날 땅으로 옮김 | 죄를 땅에서 들어 바벨론으로 멀리 보내 버림 |
| ⑧ 6:1–8 | 두 놋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 | 온 땅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미침. 북쪽(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영이 쉬심 |
더 깊이 · 바구니 속 여인과 대속죄일의 염소
일곱째 환상은 정말 기이하죠. 곡식을 재는 바구니(에바)에 여인이 앉아 있는데, 천사가 “이는 악이라” 하고 여인을 바구니 속으로 밀어 넣고 무거운 납 뚜껑을 덮어 버려요. 그러자 학 같은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이 바람을 타고 와서 그 바구니를 하늘과 땅 사이로 들고 시날 땅, 곧 바벨론으로 날아갑니다(5:5–11). 😄 죄를 택배 상자에 담아 테이프로 꽁꽁 싸서 반송하는 장면 같아요.
레위기를 읽은 분이라면 이 장면에서 대속죄일의 아사셀 염소가 떠오를 거예요. 대제사장이 백성의 모든 죄를 고백하며 염소 머리에 두고, 그 염소를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멀리 보냈죠(레 16:21–22). 스가랴의 환상은 같은 메시지를 새 방식으로 말해요. 하나님은 죄를 덮으실 뿐 아니라, 죄를 그분의 백성이 사는 땅에서 들어 멀리 옮겨 버리십니다. 그리고 바로 앞 넷째 환상에서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3:9) 약속하셨어요.
고소당한 대제사장, 새 옷을 입다
여덟 환상의 한가운데, 넷째 환상은 법정 장면이에요. 하늘 법정에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서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사탄이 서서 그를 고소합니다(3:1). 그런데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어요(3:3).
레위기를 아는 사람에게 이건 충격적인 장면이에요. 대제사장은 가장 정결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대속죄일에는 몸을 씻고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어요(레 16:4). 그런데 백성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오물투성이 옷을 입고 서 있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백성 전체의 모습이었어요. 사탄의 고소는 틀린 말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때 여호와께서 사탄을 꾸짖으세요.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3:2). 하마터면 다 타 버릴 뻔했던 나무, 하나님이 불 속에서 손을 넣어 건져 낸 나무라는 거예요. 그리고 명령이 내려집니다.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스가랴 3:4–5
재밌는 건 5절이에요. 옷을 갈아입히는 걸 보던 스가랴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어요. “관도 씌워 주세요!” 대제사장의 관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금패가 붙어 있었죠(출 28:36–38). 😄 감동한 나머지 하늘 법정에서 선지자가 의견을 내 버린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 요청대로 해 주십니다.
이 장면은 복음의 그림 그 자체예요. 우리는 스스로 옷을 갈아입지 못해요. 고소자의 말은 사실이고, 우리 옷은 더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의의 옷을 입히세요.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고 말하고, 요한계시록은 “밤낮 우리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계 12:10–11)라고 노래해요.
그리고 이 장면 끝에 하나님은 이렇게 덧붙이세요.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 내가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3:8–9).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 큰 대제사장, 단 하루 만에 온 땅의 죄를 없애실 분을 가리키는 표징이었어요(3:8). 그분이 바로 히브리서가 말하는 “단번에” 드리신 대제사장이세요(히 7:27).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아니고
다섯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순금 등잔대를 봐요.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일곱 등잔과 일곱 관이 연결되어 있는데, 좌우에 감람나무 두 그루가 서서 기름을 직접 흘려보내고 있어요(4:2–3, 12). 사람이 기름을 부을 필요가 없는 등잔대예요. 성막에서는 제사장이 매일 기름을 채워야 했는데(레 24:2–4), 이 등잔대는 살아 있는 나무에서 기름이 끊임없이 흘러요.
그리고 성전 공사를 책임진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그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스가랴 4:6–7
16년 동안 멈춰 있던 공사, 그 앞을 가로막은 “큰 산” 같은 반대와 낙심. 하나님은 그 산이 평지가 될 거라고 하세요. 그리고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4:9). 실제로 성전은 4년 뒤인 다리오 6년(주전 516년)에 완공됐어요(스 6:15).
두 감람나무는 누구일까요? 천사는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4:14)고 말해요. 당시로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제사장)와 총독 스룹바벨(다윗의 후손, 왕의 계보)이에요. 그리고 6장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은과 금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 하세요(6:11). 왕관은 원래 왕의 것인데 말이에요.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스가랴 6:12–13
이스라엘에서 왕과 제사장은 엄격히 나뉘어 있었어요. 웃시야 왕이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다가 나병에 걸린 일도 있었죠(대하 26:16–21). 그런데 스가랴는 왕이면서 제사장인 한 분을 바라봅니다. 히브리서는 이분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히 6:20; 7:1–3), 곧 왕이자 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소개해요.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마지막 때 성령의 능력으로 증언하는 하나님의 두 증인으로 다시 나타납니다(계 11:4).
금식을 계속해야 하나요?
2년 뒤, 벧엘 사람들이 제사장들에게 질문을 들고 와요. “우리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7:3). 다섯째 달은 바벨론이 성전을 불태운 달이었어요(왕하 25:8–9). 70년 동안 그날이 되면 금식하며 울었는데, 이제 성전을 다시 짓고 있으니 계속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죠.
하나님의 대답은 날카로워요.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7:5). 그리고 진짜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세요.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7:9–10). 레위기 19장이 말하던 거룩한 일상 그대로예요.
그리고 8장에서 하나님은 회복된 예루살렘의 풍경을 그려 주시는데, 이 장면이 참 정겨워요.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스가랴 8:4–5
거창한 군대나 화려한 궁전이 아니에요.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햇볕 아래 앉아 계시고,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노는 동네. 하나님이 그리신 회복의 모습은 이렇게 평범하고 따뜻한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금식에 대한 최종 대답이 나옵니다.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8:19). 슬픔의 날들이 잔칫날로 바뀐다는 거예요.
8장의 마지막 절은 더 놀라워요.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즉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8:23). 작고 초라한 공동체에게,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이 찾아올 미래를 보여 주셨어요.
말 방울에도, 부엌 솥에도 “여호와께 성결”
스가랴서의 마지막 장은 하나님이 오시는 날을 그려요. 그날 주의 발이 감람산에 서시고 산이 동서로 갈라지며(14:4), “저녁때에 빛이 있으리로다”(14:7). 그리고 에스겔 47장처럼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나 절반은 동해(사해)로, 절반은 서해(지중해)로 흐르는데,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르지 않아요(14:8).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14:9).
그리고 열방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 초막절을 지킵니다(14:16). 이스라엘만의 절기가 온 세상의 잔치가 되는 거예요. 레위기 23장에서 함께 본,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장막을 치시는 그 절기예요.
그런데 스가랴서의 마지막 두 절은 레위기를 읽은 사람에게 정말 특별한 장면이에요.
그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스가랴 14:20–21
“여호와께 성결.” 이 문구가 원래 어디에 새겨져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대제사장의 관 앞 순금 패예요(출 28:36). 온 이스라엘에서 단 한 사람, 대제사장의 이마에만 새겨졌던 글자였어요. 그런데 그날에는 그 글자가 말 목에 단 방울에까지 새겨집니다. 전쟁과 장사에 쓰던 짐승의 방울에요. 그리고 성전 제단 앞의 거룩한 주발과 집집마다 부엌의 솥이 똑같이 거룩해져요.
레위기의 세상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이 엄격히 나뉘어 있었어요(레 10:10). 거룩은 성막 안쪽 깊은 곳에, 대제사장의 이마에 있었어요.스가랴가 본 그날
거룩이 성전 담을 넘어 거리로, 마구간으로, 부엌으로 흘러넘쳐요. 온 세상이 지성소가 되고 모든 그릇이 성물이 됩니다.레위기가 “너희는 거룩하라” 명하며 시작한 여정이 여기서 완성되는 거예요. 거룩을 지키기 위해 구분하던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이 모든 것을 채우는 세상으로. 그리고 신약은 그 일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의 삶에서는 부엌의 냄비도, 출근길 자동차 열쇠도 “여호와께 성결”이에요.
스가랴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진 실
스가랴서를 읽을 때 붙들 세 가지 질문
16년 동안 기초만 놓고 손을 놓았던 성전처럼, 하나님이 시작하게 하셨는데 멈춰 둔 일은 무엇인가요? “오직 나의 영으로”라는 말씀이 오늘 그 앞에 섭니다.
고소하는 목소리가 들릴 때, 내 힘으로 옷을 빨려고 애쓰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새 옷을 받아들이나요?
예배당에서만이 아니라 식탁과 일터와 출근길에서, 오늘 내 평범한 하루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나요?
2주 스가랴 읽기 길잡이
| 날 | 범위 | 붙들 질문 |
|---|---|---|
| 1–4일 | 1–3장 |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 |
| 5–7일 | 4–6장 | 내 앞의 “큰 산”을 평지로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오나? |
| 8–9일 | 7–8장 | 내 신앙의 습관은 정말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
| 10–12일 | 9–13장 | 고난주간의 예수님을 스가랴서 안에서 찾아보기 |
| 13–14일 | 14장 | 모든 것이 거룩해지는 날을 오늘 어떻게 미리 살까? |
그래서, 스가랴서는 어떤 책인가
스가랴서는 기이한 환상의 책이 아니라 멈춰 선 공사장에 하늘을 보여 준 책입니다. 초라한 기초 앞에서 울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러운 옷을 벗기시는 법정과 끊임없이 기름이 흐르는 등잔대와 나귀를 타고 오시는 왕을 보여 주셨어요.
그리고 그 왕은 은 삼십에 팔리고, 창에 찔리고, 목자로 맞으셨습니다. 그 찔린 자리에서 열린 샘이 오늘 우리를 씻고, 언젠가 온 세상의 말 방울과 부엌 솥까지 거룩하게 할 거예요.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복 주시되, 정한 때에 이루십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스가랴 9:9